원서 한 권 읽으면 단어가 늘까? — 늘긴 느는데 생각보다 적습니다
원서를 한 권 끝내고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. 두 달 걸리셨다고요.
그런데 표정이 밝지 않으셨습니다. "읽긴 다 읽었는데, 남은 게 없는 것 같아요."
억울해하실 일이 아닙니다. 원래 그렇게 나오는 게 맞습니다. 숫자로 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실 거예요.
읽기만 해도 단어가 외워지나요?
외워집니다. 다만 조금씩입니다.
이걸 우연 학습(incidental learning)이라고 부릅니다. 외우려고 한 게 아닌데 읽다가 붙는 것을 말해요.
한 연구에서 학습자들에게 축약본 소설 한 권을 읽히고 전후를 쟀습니다. 남은 것은 모르던 단어 다섯 개 중 하나 정도였습니다.
적어 보이시죠. 그런데 이건 공짜로 얻은 다섯 중 하나입니다. 외우려고 앉아 있던 시간이 아니었으니까요.
왜 한 번 봐서는 안 붙을까요?
한 번 마주친 단어가 남을 확률은 원래 낮기 때문입니다.
이건 외국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.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같았습니다. 글에서 모르는 단어를 한 번 만났을 때 그게 붙을 확률은 아주 작았어요.
모국어에서도 이런데, 외국어라면 더합니다. 여러 번 만나야 붙습니다.
같은 단어를 몇 번이나 만나야 하는지는 단어 하나에 몇 번이 필요한가에서 다뤘습니다.
그럼 원서 읽기는 헛수고인가요?
아닙니다. 다만 기대를 바꿔야 합니다.
읽기가 하는 일은 새 단어를 심는 것보다 이미 아는 단어를 굳히는 것에 가깝습니다.
- 「봤던 것 같은데」였던 단어가 「아는 단어」가 됩니다
- 단어가 어떤 말과 붙어 다니는지가 눈에 익습니다
- 문장이 덩어리로 들어옵니다
회화에 필요한 건 사실 이쪽입니다. 새 단어를 아는 것보다, 아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것이 먼저니까요.
왕초보인데 원서를 읽어도 되나요?
모르는 단어가 페이지마다 열 개 넘게 나오면 안 됩니다.
그 상태에서는 읽는 게 아니라 사전 찾기가 됩니다. 우연 학습이 일어나려면 내용이 굴러가야 해요.
기준은 간단합니다. 한 쪽에 모르는 단어가 두세 개. 그보다 많으면 한 단계 쉬운 책으로 내려가시는 게 맞습니다.
얼마나 알아야 편하게 읽히는지는 몇 단어를 알아야 대화가 될까에 숫자로 적어 뒀습니다.
오늘 해볼 것 하나
읽으시는 책에서 오늘 세 번 이상 마주친 단어 하나만 고르세요.
그리고 그 단어로 내 이야기 한 문장을 만들어 소리 내어 말해보세요.
읽기에서 건진 단어를 입으로 한 번 꺼내는 것 — 이 한 걸음이 다섯 중 하나를 셋 중 하나로 만듭니다.
Nagy, W. E., Herman, P. A., & Anderson, R. C. (1985). Learning words from context. Reading Research Quarterly, 20(2), 233–253. (영어 모국어 학습자 대상 연구입니다)
영어 원서를 읽으면 단어가 저절로 외워지나요?
조금씩 외워집니다. 축약본 소설 한 권을 읽힌 연구에서 모르던 단어 다섯 개 중 하나 정도가 남았습니다. 적어 보이지만 외우려고 앉아 있던 시간이 아니라 읽는 김에 붙은 것입니다. 다만 「한 권 읽으면 다 외워진다」는 기대는 맞지 않습니다.
한 번 본 단어는 왜 기억에 안 남나요?
한 번 마주친 단어가 남을 확률은 원래 낮습니다.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글에서 모르는 단어를 한 번 만났을 때 그것이 붙을 확률은 아주 작았습니다. 외국어라면 더합니다. 여러 번 만나야 붙습니다.
영어 왕초보인데 원서를 읽어도 되나요?
한 쪽에 모르는 단어가 두세 개 정도인 책이 맞습니다. 페이지마다 열 개 넘게 나오면 읽기가 아니라 사전 찾기가 되고, 우연 학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. 그럴 때는 한 단계 쉬운 책으로 내려가는 것이 낫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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